
옷장보다 바닥이 더 솔직했습니다
집을 정리하다 보면 그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쉬고 싶은지가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날 방문한 집에는 '사회적인 나'를 위한 옷들이 참 많았습니다.
단정하게 다려진 셔츠, 격식을 갖춘 재킷, 잘 차려입으면 꽤 근사할 것 같은 옷들이 옷장 가득 걸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옷들에는 손이 많이 닿은 흔적이 없었습니다. 자주 입은 옷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닥이었습니다.
바닥 여기저기에 잠옷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폭신한 소재의 잠옷,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그려진 잠옷, 보고만 있어도 말랑해지는 색감의 잠옷들.
옷장 안의 옷들보다 훨씬 자주, 훨씬 가까이 쓰이고 있는 것들이었습니다.
옷장은 바깥을 향해 있었고, 바닥은 안을 향해 있었습니다.
버리기 아까워서 넣어둔 옷들
정리 현장에서 옷을 함께 살펴보다 보면 자주 보이는 풍경이 있습니다.
목이 늘어난 티셔츠, 색이 바랜 면 바지, 남편이 잘 안 입는 옷, 다 자란 아이가 두고 간 옷. 이런 것들이 어느새 엄마의 옷장 한 칸을 채우고 있습니다.
버리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바깥에 입고 나가기엔 어색하니까. 실내복으로, 잠옷으로.
그 자리에 자기 취향으로 고른 것은 없습니다. 자신을 위해 산 것도 없습니다. 남은 것들이, 쓸 만한 것들이 자기 서랍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어딘가 짠합니다.
나쁜 선택이어서가 아닙니다. 그게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입니다.
물건은 그 사람을 닮아 있습니다
정리 현장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한 가지 감각이 생깁니다.
자주 손이 가는 물건에는 그 사람이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이 담겨 있다는 감각입니다.
잘 정돈된 책상 위에 유독 하나만 꺼내져 있는 책. 서랍 깊숙이 들어가 있어야 할 담요가 항상 소파 위에 올라와 있는 것. 주방 한켠에 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특정 컵 하나.
이런 것들은 정리가 안 된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그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날의 잠옷들도 그랬습니다.
바닥에 널려 있는 건 게으름이 아니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순간 가장 먼저 손이 가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전부 자기가 골라서 산 것들이었습니다.
밖에서는 단정한 얼굴로 자신의 역할을 해내다가, 문을 닫는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말랑한 것들 사이에 자신을 놓아두고 싶은 사람. 그 마음이 바닥에 있었습니다.
나를 대접하는 물건 한 가지
누군가는 향초를 켭니다.
누군가는 무거운 이불을 꺼냅니다.
누군가는 좋아하는 컵을 씁니다.
누군가는 귀여운 잠옷을 입습니다.
이 물건들이 비싸거나 특별해서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 그것과 관계를 맺어왔기 때문입니다.
켤 때마다 숨이 좀 쉬어지고, 꺼낼 때마다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경험이 쌓이면, 그 물건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게 됩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신호가 됩니다. 나를 대접하는 방식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귀여운 잠옷이 많은 어른의 집을 보면 마음이 조금 뭉클합니다.
잠옷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자신을 위해 고른 것들로 서랍을 채운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어서입니다.
집에서는, 귀여워도 괜찮습니다.
오늘의 한 걸음
오늘은 "아무거나" 말고 나를 쉬게 해주는 잠옷 한 벌을 골라보세요.
몸은 생각보다 작은 신호에도 반응합니다. 잠옷을 갈아입는 순간, 하루를 버티던 긴장이 조금 느슨해지기도 하니까요.
'이제 쉬어도 된다'는 감각을 스스로에게 건네는 연습이 될 수도 있습니다.
Q. 당신의 서랍 안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자신을 위해 고른 것들인가요, 남은 것들이 채우고 있나요.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는 당신만의 물건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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