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계단 밑 1평을 선물한 뒤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나는 어디서 숨 쉬고 있을까. 주방 키큰장 한 칸을 나만의 자리로 정하고 나서야, 1평은 크기가 아니라 권한의 문제라는 걸 알았습니다.

남편에게 계단 밑 1평을 선물한 뒤로, 우리 집에는 전에 없던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남편의 짐들이 그리로 옮겨가면서 거실이 넓어졌고, 제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창고를 정리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다가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럼 나는 어디서 숨 쉬고 있지?"
가족의 취미를 위해 공간을 내어주고, 집안의 흐름을 맞추느라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니,
정작 아무도 침범하지 않는 나만의 자리는 집 안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누구의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의 자리가 필요합니다
저는 아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정리 일을 하며 수많은 가정의 문을 열어봅니다.
그때마다 마음을 가장 무겁게 누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집 안 어디에도 엄마의 흔적이 없는 풍경입니다.
거실은 아이의 장난감으로, 안방은 남편의 물건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정작 살림을 책임지는 사람의 자리는 식탁 한쪽이나 조리대 구석, '임시 대기석'뿐인 경우가 많습니다.
잠깐 앉았다가도 누군가 부르면 바로 일어나야 하는 자리.
그곳에서는 읽다 만 책도, 적다 만 노트도, 식어버린 차 한 잔도 오래 머물지 못합니다.
정리가 안 되는 게 아닙니다.
마음이 머물 수 있는 고정된 좌표가 없어서, 먼저 지치는 겁니다.
주방 키큰장 한 칸, 나만의 오픈 갤러리
그래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주방 키큰장 중 가장 손이 잘 닿는 한 칸을 통째로 비웠습니다.
그리고 그 칸을 오직 저만을 위한 자리로 정했습니다.
지금 읽는 책들, 그림 그리는 취미를 위한 색연필, 유난히 아끼는 연필깎이 하나까지.
문이 없는 오픈장이라 식탁에 앉아 있으면 그 한 칸이 늘 시야에 들어옵니다.
예전에는 식사 시간이 되면 보던 책들을 급히 거실로 옮기며 묘한 자괴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식사가 시작되면 그 칸에 책을 쓱 밀어 넣으면 그만입니다.
정돈된 자리에 놓인 내 물건들을 바라볼 때마다, '아, 여기는 내 자리구나' 하는 안정감이 마음에 내려앉습니다.
기준은 하나였습니다.
이 한 칸 안에서는, 누구의 허락도 구하지 않는다는 것.
물론 그 한 칸이 계속 늘어나서는 안 됩니다.
정확히 그 크기만큼만 갖기로, 저 스스로와도 약속했습니다.
그 한 칸을 갖고서야 알았습니다.
1평은 크기가 아니라, 권한의 문제였다는 걸요.
나의 자리가 생기면, 가족을 대하는 여유가 달라집니다
신기한 변화가 하나 있었습니다.
나를 위한 1평이 생기자, 거실에 놓인 남편의 물건들이 전보다 덜 거슬리기 시작했습니다.
전에는 남편의 짐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늘었네.' '저것도 좀 치우지.'
그런데 이제는 다르게 보입니다.
'저 사람도 자기 자리에서 숨 쉬고 있구나.'
이미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한 사람은, 타인의 흐름을 덜 위협으로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정리는 희생이라기보다, 나와 가족 사이의 균형을 조금씩 다시 맞춰가는 일에 가깝습니다.
오늘의 한걸음
오늘 집 안을 천천히 둘러보세요.
거실, 주방, 안방을 눈으로 훑다 보면 어느 순간 멈추는 자리가 있을 겁니다.
누구의 물건도 아니고, 누구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는 자리.
그런 자리가 벌써 있다면 다행입니다.
없다면 아주 작아도 괜찮습니다.
키큰장 한 칸, 서랍 하나, 테이블 한 귀퉁이면 충분합니다.
거기에 조용히 이름을 붙여보세요.
이곳은 나의 1평이라고.
Q. 지금 이 집 안에, 아무도 나에게 설명을 요구하지 않는 자리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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